노란 벽지, 형광등의 윙윙거리는 소리, 끝없이 이어지는 똑같은 사무실 복도. 인터넷에서 시작된 한 장의 사진이 전 세계 괴담이 됐고, 그 괴담이 만 20세 감독의 손에서 영화가 됐습니다. 백룸(Backrooms)이 2026년 5월 27일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봉한 지 사흘, 이제 개봉 전 해외 첫 반응이 아니라 직접 본 뒤의 심층 리뷰를 쓸 때가 됐습니다.
이 글은 개봉 전 관람평이 아니라, 실제로 본 뒤 쓰는 연출 중심 리뷰입니다. 백룸이라는 인터넷 괴담을 어떻게 영화 언어로 옮겼는지, 만 20세 케인 파슨스 감독의 연출이 어디서 빛나고 어디서 한계를 보이는지, 추이텔 에지오포·레나테 레인스베의 연기가 이 독특한 공포에 어떤 무게를 더하는지를 중심으로 짚습니다. 결말 직접 스포일러는 피하되, 공포 설계의 구조는 깊이 들어갑니다.
원작의 출발 — 인터넷 괴담이 영화가 되기까지
백룸은 원작 소설이나 만화가 없습니다. 2019년 한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노란 방” 사진 한 장과 짧은 글에서 시작된 집단 창작 괴담(크리피파스타)이 원작입니다. “현실의 벽을 잘못 통과하면 도달하는, 끝없이 똑같은 빈 공간”이라는 설정에 전 세계 네티즌이 이야기를 덧붙였고, 케인 파슨스가 13세이던 2022년 유튜브에 올린 단편이 수억 조회수를 기록하며 A24의 장편 제작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출발점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이자 약점입니다. 정해진 줄거리가 없는 괴담을 110분 장편으로 만들려면 ‘없던 서사’를 새로 지어야 하는데, 백룸은 그 빈칸을 한 인물의 생존과 기억으로 채웁니다. 원작의 핵심인 ‘공간 그 자체의 공포’를 해치지 않으면서 드라마를 얹는 균형이 이 영화의 연출적 도전입니다.
ⓒ A24 / TMDB
연출 분석 — 만 20세 감독이 공포를 설계한 방식
케인 파슨스의 연출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빼는 공포’입니다. 점프 스케어를 남발하지 않고, 똑같은 공간의 반복과 소리의 미세한 변화로 불안을 쌓습니다. 세 가지 연출 축이 또렷합니다.
연출 축
방식
효과
공간의 반복
똑같은 복도를 다른 각도로 반복 촬영, 미세한 차이만 변주
관객이 방향 감각을 잃으며 인물과 함께 길을 잃음
사운드 설계
형광등 윙윙거림을 베이스로, 공포의 정체를 소리로 먼저 암시
보이지 않는 위협의 긴장을 시각보다 청각으로 구축
롱테이크
컷을 아껴 한 공간에 오래 머무름, 카메라가 천천히 이동
편집의 안전망 없이 공간 자체가 공포가 되게 함
20세 감독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절제가 전반부에 있습니다. 다만 후반부로 갈수록 ‘설명하려는 욕심’이 끼어들면서 이 절제가 흔들립니다. 공간의 미스터리를 끝까지 신비로 남겼다면 더 강했을 텐데, 일부 정체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선택이 호불호를 만듭니다. 이 부분이 케인 파슨스의 다음 작품에서 다듬어질 지점입니다.
ⓒ A24 / TMDB
연기 — 추이텔 에지오포·레나테 레인스베가 빈 공간에 채운 무게
거의 빈 공간에서 인물 한두 명이 끌고 가는 영화라, 배우의 연기가 무너지면 영화 전체가 무너집니다. 두 배우의 캐스팅이 이 위험을 막았습니다.
추이텔 에지오포(노예 12년·닥터 스트레인지)는 공포에 짓눌리면서도 이성을 붙들려는 인물을 절제된 표정으로 그립니다. 비명보다 침묵으로 공포를 표현하는 연기라, 백룸의 ‘빼는 공포’ 연출과 정확히 맞물립니다. 대사가 적은 영화에서 그의 눈빛이 설명을 대신합니다.
레나테 레인스베(위어스트 퍼슨 인 더 월드로 칸 여우주연상)는 합류 분량은 적지만, 등장하는 순간 영화의 정서를 한 단계 끌어올립니다. 그녀의 캐릭터가 던지는 질문이 공간의 공포에 인간적 무게를 더하고, 두 배우가 함께하는 중반 시퀀스가 이 영화의 정서적 정점입니다. 빈 공간 공포물이 자칫 단조로워질 위험을 두 배우의 연기 밀도가 막아냅니다.
ⓒ A24 / TMDB
강점과 한계 — 무엇이 빛나고 무엇이 아쉬운가
빛나는 지점
공간 자체를 공포로 만든 연출 — 괴물이 아니라 똑같은 복도의 반복이 공포의 본체. 호러 장르에서 드문 시도입니다.
사운드 디자인 — 형광등 소리를 공포의 악기로 쓴 설계가 인상적. 극장 사운드에서 진가가 드러납니다.
두 배우의 절제된 연기 — 비명이 아니라 침묵으로 쌓는 공포에 정확히 맞물립니다.
만 20세 감독의 미장센 — 나이가 믿기지 않는 화면 통제력. A24가 왜 투자했는지 납득됩니다.
아쉬운 지점
후반부의 설명 욕심 — 공간의 미스터리를 끝까지 신비로 남겼다면 더 강했을 텐데, 일부 정체를 드러내며 긴장이 풀립니다.
서사의 빈약함 — 괴담 원작이라 정해진 줄거리가 없어, 인물 서사가 다소 얇습니다. 분위기로 버티지만 드라마를 기대하면 부족합니다.
호불호 큰 결말 — 열린 결말에 가까워 명확한 해소를 원하는 관객에게는 답답할 수 있습니다.
반복의 양날 — 공간 반복이 공포의 핵심이자, 중반부 일부 구간에서는 지루함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 A24 / TMDB
이런 사람에게 추천 / 비추천
추천
비추천
분위기·공간 호러를 좋아하는 관객
점프 스케어·빠른 공포를 원하는 관객
백룸 괴담을 알고 있던 인터넷 세대
명확한 서사·결말을 원하는 관객
A24 호러(유전·미드사마) 톤을 즐기는 관객
잔혹·고어 호러를 기대한 관객
연출·사운드 설계를 분석하며 보는 관객
반복되는 화면에 쉽게 지루해지는 관객
한 줄 평 — “괴물 없이 공간만으로 공포를 만든, 만 20세 감독의 인상적인 데뷔작. 후반부 설명 욕심이 아쉽지만 연출·사운드·연기의 완성도는 분명하다.” 별점으로는 5점 만점에 3.5점, A24 호러 입문자보다는 분위기 호러를 아는 관객에게 더 잘 맞는 작품입니다.
관람 포맷·어디서 볼까 — 사운드가 핵심, 극장 우선
백룸은 사운드 디자인이 공포의 절반을 책임지는 영화라, 사운드 환경이 좋은 포맷에서 볼수록 만족도가 올라갑니다.
포맷
추천 정도
이유
돌비 시네마/아트모스
★★★★★
형광등 윙윙거림·공간 울림이 입체 음향에서 진가 발휘
일반관
★★★★
화면 반복이 핵심이라 무난하게 즐길 수 있음
집에서 OTT
★★★
사운드 환경이 좋지 않으면 공포 절반 손실
백룸은 한국에서 세계 최초 개봉한 작품이라 현재(개봉 D+3)는 극장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A24 작품 한국 OTT 합류 통상 패턴(극장 약 4~5개월 후)을 따르면, 약 2026년 10~11월 왓챠 또는 웨이브 입점이 예상됩니다. 사운드가 공포의 핵심인 만큼, 가능하면 극장 돌비 사운드에서 보시는 걸 권합니다.
백룸은 ‘괴물 없는 공포 영화’라는 도전을 만 20세 감독이 상당한 완성도로 해낸 작품입니다. 똑같은 복도의 반복과 형광등 소리만으로 110분을 끌고 가는 연출, 비명 대신 침묵으로 공포를 쌓는 두 배우의 연기는 분명히 인상적입니다. 후반부 설명 욕심과 얇은 서사가 아쉽지만, 데뷔작으로서 케인 파슨스의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완성도입니다.
분위기 호러를 좋아하고 백룸 괴담의 그 불안한 감각을 스크린에서 느끼고 싶다면, 극장 돌비 사운드에서 챙길 만한 작품입니다. 반대로 빠른 공포·명확한 서사를 원한다면 결이 다릅니다. 결말의 열린 처리에 대한 해석이 궁금하다면, 스포일러를 포함한 결말 해석 글을 별도로 정리해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