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에 투자한 금액은 2022~2025년 누적 2조5천억 원을 넘었다. 그 성과가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 장르가 스릴러다. 오징어게임이 82개국 1위를 기록한 이후, 수리남·더 글로리·지금 우리 학교는이 연달아 글로벌 차트에 올랐다. 한국 스릴러는 실험 단계가 아니라 이제 검증된 장르가 됐다.
문제는 선택지가 너무 많아졌다는 것이다. IMDB 7.0 이상을 받은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만 해도 30편이 넘는다. 뭐부터 봐야 하는지 막막하고, 12부작·16부작이라는 숫자 앞에서 시작을 못 한다는 사람이 많다. 이 글은 그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안내다.
2026년 신작 기리고부터 2020년 첫 청소년 범죄 스릴러 인간수업까지, 6부작 법정극부터 16부작 복수극까지 — 취향과 여유에 따라 다르게 고를 수 있도록 7편의 핵심만 정리했다.
한국 스릴러가 끊기 어려운 이유 — 구조가 다르다
한국 스릴러가 서구 작품들과 다른 점은 인물의 출발 위치다. 주인공이 처음부터 강자인 경우가 드물다. 수리남에서 하정우가 연기한 인물은 평범한 사업가다. 소년심판의 주인공은 소년범을 혐오하는 판사지만, 그 혐오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 이야기의 동력이다. 더 글로리의 문동은은 20년을 준비한 복수자지만, 그 준비 과정이 공포스럽다.
시작점이 약자이거나 결함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에,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관객은 스스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응원해야 할 사람이 누군지 애매해지는 순간이 반복된다. 그 불편함이 오히려 화면에서 눈을 떼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다. 7편 모두 이 패턴을 공유한다.
기리고 — 2026년 YA 호러 스릴러, 넷플릭스 한국 1위 (8부작)
2026년 공개 직후 넷플릭스 한국 1위를 찍고 21개국 TOP10에 동시 진입했다. 박윤서 감독의 한국 최초 YA 호러로, 소원을 들어주는 앱 '기리고'를 통해 고등학생들이 연쇄적으로 죽어가는 구조다. 전소영·강현준 주연. 인물 하나하나의 욕망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따라가는 구조가 탄탄하게 짜여 있고, 피의 저주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 서서히 밝혀지는 과정에 흡입력이 있다.
8부작이라 한 번에 완주할 수 있다. 결말에 시즌2를 암시하는 장치가 있어, 이미 다음 시즌을 기대하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강도 높은 고어 장면은 없고 심리적 공포 중심이라, 청소년 스릴러나 호러 장르가 처음이라면 입문으로 적합하다.
추천: YA 호러 입문, 8부 안에 완주하고 싶은 사람, K-호러가 궁금한 사람 비추천: 학교 폭력 서사가 트리거되는 사람
기리고 포스터. 2026년 넷플릭스. ⓒ 네이버 영화
더 에이트쇼 — 계층 서바이벌 심리 스릴러 (8부작, IMDB 7.2, RT 75%)
2024년 5월 공개 후 넷플릭스 11개국 TOP10에 진입했다. 8층으로 나뉜 밀폐 공간에 8명이 갇혀 시간이 흐를수록 돈을 버는 쇼에 참가한다는 설정이다. 류준열·천우희·박정민·이율음·박해준 라인업. 한재림 감독이 연출했으며, 네이버 웹툰 <머니게임> 원작이다. 초반 3회는 설정 구축에 집중하고, 4회부터 인물들 사이 권력 구조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강도가 회차마다 올라간다. IMDB 7.2, RT 75% (2026년 5월 기준).
오징어게임 이후 넷플릭스 한국 서바이벌 장르의 다음 작품을 찾는 사람에게 맞는 선택이다. 두 작품은 설정은 비슷하지만 방향이 다르다. 오징어게임이 게임의 규칙을 따라가는 이야기라면, 더 에이트쇼는 밀폐 공간 안에서 계층이 어떻게 형성되고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추천: 서바이벌·계급 심리 스릴러, 오징어게임 이후 유사 장르 탐색 비추천: 신체적 폭력 장면이 거북한 사람
더 에이트쇼(The 8 Show) 포스터. 2024년 넷플릭스. ⓒ 네이버 영화
소년심판 — 법정 스릴러의 무게, 짧고 묵직하게 (6부작, IMDB 7.9, RT 93%)
김혜수가 소년범을 혐오하는 판사 심은석으로 출연한다. 소년법원에 발령받은 심은석이 사건을 하나씩 다루면서 자신의 편견이 흔들리는 과정이 중심이다. 6부작이라 압축도가 높고, 각 회차가 독립적인 사건을 다루면서도 전체 서사가 연결된다. 2022년 2월 공개. RT 93%는 같은 해 공개된 한국 넷플릭스 오리지널 중 가장 높은 비평 점수에 해당한다. IMDB 7.9, RT 93% (2026년 5월 기준).
법정 드라마이지만 실제 재판 장면보다 판사가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집중하는 작품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단순하게 나누지 않고, 청소년 범죄의 구조적 맥락을 짚어낸다. 6부라서 주말 하루에 완주할 수 있다. 짧고 강한 스릴러를 찾는다면 가장 먼저 추천할 작품이다.
추천: 법정 드라마, 사회 이슈 스릴러, 짧게 완주하고 싶은 사람 비추천: 아동 학대·청소년 범죄 묘사가 힘든 사람
소년심판(Juvenile Justice) 포스터. 2022년 넷플릭스. ⓒ 네이버 영화
수리남 — 실화 기반 마약 첩보 액션 (6부작, IMDB 7.3, RT 88%)
수리남이라는 국가에서 한국인 마약왕으로 활동한 실존 인물을 잡기 위해, 평범한 사업가가 정부 비밀 작전에 끌려들어가는 이야기다. 하정우(강인구)·황정민(전요환)·박해수·유연석 라인업. 윤종빈 감독 연출. 2022년 9월 공개. 실화 기반이기 때문에 결말이 어떻게 날지 유추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인물들이 서로를 믿고 배신하는 과정이 긴장감을 유지한다. IMDB 7.3, RT 88% (2026년 5월 기준).
낯선 국가 배경이 오히려 강점이 됐다. 한국·수리남·미국 정부 사이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구조가 6부 안에 잘 압축됐다. 마약 범죄나 첩보 액션 계열을 좋아한다면 바로 시작할 수 있다. 하정우와 황정민이 각자 다른 방향의 강도를 보여주는 대비가 작품을 움직이는 축이다.
추천: 마약 실화 기반, 첩보 액션, 하정우·황정민 팬 비추천: 마약·폭력 묘사가 거북한 사람
수리남(Narco-Saints) 포스터. 2022년 넷플릭스. ⓒ 네이버 영화
더 글로리 — 20년 복수극의 교과서 (파트1+2 합산 16부작, RT 82%)
학교폭력 피해자가 20년을 준비해서 가해자들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다. 김은숙 작가·안길호 감독. 송혜교(문동은)·이도현·임지연·박성훈·정성일·차주영 라인업. 2022년 12월 파트1, 2023년 3월 파트2 공개. 59회 백상예술대상 대상·여우주연상(송혜교)·여우조연상(임지연) 수상. RT 82%, 시청자 Popcornmeter 93% (2026년 5월 기준). 파트1 8부, 파트2 8부로 나뉘지만 이어서 보는 구조다.
문동은이 복수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드러나는 방식이 작품의 핵심이다. 판타지적 요소 없이 철저하게 현실 기반의 계획을 쌓아가는 구조라, 회차가 지날수록 그 촘촘함이 쌓인다. 파트1 마지막회에서 멈추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가해자들이 각각 어떻게 무너지는지 보는 재미가 있다.
추천: 복수극, 심리 스릴러, 촘촘한 서사 좋아하는 사람 비추천: 학교폭력·고어 묘사가 트리거되는 사람
더 글로리(The Glory) 포스터. 2022-2023년 넷플릭스. ⓒ 네이버 영화
지금 우리 학교는 — K-좀비 스릴러, 고등학교 생존 서사 (12부작, IMDB 7.5)
고등학교 안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발생하고, 살아남은 학생들이 탈출을 시도하는 구조다. 주시호·박지후·윤찬영·조이현·이유미 라인업. 2022년 1월 공개 후 넷플릭스 글로벌 2위에 올랐다. 12부작이라 분량이 있지만, 전반부에서 인물들이 자리를 잡기 때문에 중반 이후 속도가 빠르게 느껴진다. IMDB 7.5 (2026년 5월 기준).
좀비 장르의 고전 규칙(달리는 좀비·고립·자원 고갈)에 학교 공간 특유의 계급·관계·갈등을 얹은 것이 차별점이다. 클리프행어 구조로 회차가 이어지기 때문에 한 편만 보고 멈추기 어렵다. 인물이 많아서 초반 정리가 필요한데, 5회쯤 지나면 누가 살아남는지를 스스로 예측하게 된다.
추천: 좀비 스릴러, 청소년 앙상블, 빠른 전개를 선호하는 사람 비추천: 좀비 고어·잔혹 장면이 거북한 사람
지금 우리 학교는(All of Us Are Dead) 포스터. 2022년 넷플릭스. ⓒ 네이버 영화
인간수업 — 한국 넷플릭스 청소년 범죄 스릴러 최초 작품 (10부작, IMDB 7.4)
2020년 4월 공개된 한국 넷플릭스 최초 청소년 범죄 스릴러다. 김동희(지수)가 모범생 외양 뒤에서 조직 범죄에 연루된 고등학생을 연기한다. 박주현(배규리)·정다빈·최민수 라인업.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김동희가 이 작품으로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됐다. IMDB 7.4 (2026년 5월 기준).
2026년 기준으로도 추천 목록에 자주 오르는 이유는 인물 심리가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선의 주인공도 최악의 악당도 없다. 각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하고 그 결과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따라가다 보면, 판단 자체가 어려워지는 순간이 반복된다. 이 불확실함이 10부 안에서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6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청소년 범죄 스릴러의 기준점으로 자주 언급된다.
추천: 청소년 범죄 스릴러, 인물 심리 중심 서사, 김동희 초기작 탐색 비추천: 성범죄·학교 폭력 관련 묘사가 힘든 사람
인간수업(Extracurricular) 포스터. 2020년 넷플릭스. ⓒ 네이버 영화
취향별 시작점을 정리하면 이렇다. 짧게 완주하고 싶다면 소년심판(6부) 또는 수리남(6부)부터. 2026년 최신작이 궁금하다면 기리고(8부). 복수극 계열이라면 더 글로리. 서바이벌 심리 스릴러는 더 에이트쇼. 좀비 장르는 지금 우리 학교는. 청소년 범죄 스릴러의 원형을 보고 싶다면 인간수업 순으로 선택하면 된다.
한국 스릴러는 초반 1~2회에서 세계를 설명하는 데 시간을 쓰고 3회 이후부터 속도가 붙는 패턴이 많다. 처음 두 회에서 손이 느려진다면 한 회만 더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 어느 작품이든 두 회 이상 보고 판단하는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