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소파에 널브러져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웃고 싶다’ 싶은 밤이 있습니다. 그런 날 머리 아픈 스릴러나 눈물 쥐어짜는 신파를 틀면 오히려 더 피곤해집니다. 이 글을 쓰는 편집자 R도 한 주가 유난히 길었던 금요일 밤이면, 평점 높은 화제작 대신 이미 결말 다 아는 코미디를 다시 트는 편입니다.
그런데 막상 ‘코미디 영화 추천’을 검색하면 제목만 잔뜩 나열된 리스트가 대부분이라, 정작 ‘이게 지금 내 기분에 맞나’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한국·넷플릭스에서 바로 볼 수 있는 작품과 해외 코미디까지 12편을 골라, 각각 어떤 웃음인지, 누구랑 보면 좋은지를 상황별로 묶었습니다.
평점·출연·러닝타임 같은 수치는 전부 TMDB에서 확인한 실제 값만 넣었습니다. 가족 모임용, 연인이랑 보기 좋은 작품, 혼자 맥주 한 캔 까고 보기 딱인 작품까지 — 오늘 밤 뭘 틀지 여기서 정하시면 됩니다.
🔍 크게 보기ⓒ CJ ENM
온 가족이 빵 터지는 한국 코미디 4편
명절이나 주말, 부모님까지 다 모인 거실에서 틀 수 있는 코미디는 의외로 까다롭습니다. 너무 19금이면 분위기 어색해지고, 너무 잔잔하면 어르신들이 30분 만에 주무십니다. 그래서 ‘다 같이 웃을 수 있는’ 한국 코미디 네 편부터 추천합니다.
첫 번째는 극한직업(2019)입니다. 마약반 형사 다섯 명이 잠복 수사를 위해 치킨집을 인수했다가 장사가 대박 나버린다는 이야기인데, TMDB 평점 7.2점에 국내 누적 1,626만 관객으로 역대 한국영화 흥행 2위에 오른 작품입니다. 이병헌 감독이 연출하고 류승룡·이하늬·진선규·이동휘·공명이 마약반 5인방으로 나옵니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같은 대사가 유행어가 됐을 만큼, 대사 자체로 웃기는 작품이라 부모님과 봐도 무난합니다. 러닝타임 111분으로 길지도 않습니다.
두 번째 엑시트(2019)는 재난 영화의 얼굴을 한 코미디입니다. 취업 못 한 백수 용남(조정석)이 어머니 칠순 잔치 도중 유독가스 테러에 휘말려, 대학 산악동아리 시절 갈고닦은 클라이밍 실력으로 건물을 타고 탈출하는 이야기입니다. TMDB 평점 7.6점, 러닝타임 103분. 조정석과 윤아의 호흡이 좋고, 무엇보다 폭력·선정성이 거의 없어서 정말 온 가족 관람용으로 안전합니다.
🔍 크게 보기ⓒ CJ ENM
세 번째는 수상한 그녀(2014)입니다. 욕쟁이 칠순 할매가 우연히 들른 사진관에서 스무 살 외모로 젊어진다는 판타지 코미디로, 황동혁 감독(나중에 ‘오징어 게임’을 만든 그 감독입니다)이 연출했습니다. 심은경의 능청스러운 할머니 연기가 이 영화의 전부라고 해도 될 만큼 좋습니다. TMDB 7.3점. 중반부터는 웃다가 울컥하는 구간이 있어서, 부모님과 보면 묘하게 같이 뭉클해지는 작품입니다.
네 번째 써니(2011)는 중년이 된 여고 동창들이 흩어진 친구들을 다시 모으는 이야기입니다. 강형철 감독 작품이고 유호정·심은경·강소라가 과거와 현재를 오갑니다. TMDB 7.8점으로 이 네 편 중 가장 높습니다. 1980년대 학창시절 장면이 워낙 생생해서, 그 시절을 보낸 부모님 세대가 보면 추억에 잠기고, 젊은 세대가 봐도 충분히 웃깁니다. 러닝타임은 135분으로 조금 긴 편이라 시간 여유가 있을 때 트시는 걸 추천합니다.
🔍 크게 보기ⓒ CJ ENM
연인·친구랑 보기 좋은 청춘 코미디 3편
데이트나 친구 모임처럼 또래끼리 볼 땐 좀 더 발랄하고 공감 가는 청춘물이 잘 맞습니다. 너무 가족적이지도, 너무 부담스럽지도 않은 세 편을 골랐습니다.
먼저 스물(2015)입니다. 스무 살이 된 백수·재수생·대학 새내기 세 친구의 좌충우돌을 그린 영화로, 김우빈·이준호·강하늘이 주연입니다. 재밌는 건 이 영화도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 작품이라는 점인데, 대사 받아치는 리듬감이 확실히 비슷합니다. TMDB 7.2점. 술자리에서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상황들이 계속 나와서, 친구들이랑 같이 보면 ‘저거 완전 우리 얘기’ 하면서 웃게 됩니다.
다음은 다시 엑시트를 데이트용으로도 강력 추천합니다. 위에서 가족용으로 꼽았지만, 사실 손에 땀 쥐는 탈출 액션과 가벼운 로맨스 라인이 섞여 있어서 연인이 봐도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긴장과 웃음이 번갈아 오니까 중간에 졸 일이 거의 없습니다.
해외 작품을 원한다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이 데이트용으로 의외의 정답입니다. 웨스 앤더슨 감독 특유의 대칭 구도와 파스텔 색감이 화면 가득해서, 영화 자체가 예쁜 엽서 같습니다. 랄프 파인즈가 연기하는 전설적인 호텔 지배인 구스타브가 살인 누명을 쓰고 벌이는 소동을 그리는데, TMDB 평점 8.0점에 투표 수가 1만 6천 건이 넘을 만큼 평가가 탄탄합니다. 미국 아카데미에서 미술·의상·분장·음악 4개 부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빵 터지는 슬랩스틱 코미디는 아니고, 위트 있는 대사와 황당한 상황으로 키득거리게 만드는 쪽이라, 취향이 맞는 상대와 보면 두고두고 얘기할 거리가 생깁니다.
🔍 크게 보기ⓒ 폭스 서치라이트
혼자 맥주 한 캔, 해외 코미디 3편
아무도 신경 안 쓰고 혼자 보는 밤이라면, 좀 더 막 나가는 해외 코미디도 부담 없습니다. 가족이랑 같이 보긴 민망하지만 혼술 안주로는 최고인 세 편입니다.
대표작은 행오버(2009)입니다. 라스베이거스로 총각 파티를 떠난 친구들이 만취해서 필름이 끊긴 다음 날, 신랑이 사라진 걸 발견하고 전날 밤 행적을 거꾸로 추적하는 이야기입니다. 토드 필립스 감독(나중에 ‘조커’를 만든 그 감독입니다) 작품이고, 브래들리 쿠퍼·잭 갤리퍼내키스가 나옵니다. TMDB 평점 7.3점에 투표 수가 1만 8천 건을 넘길 만큼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작품입니다. 러닝타임 100분으로 짧고,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다음이 궁금해서 멈추기 어렵습니다.
🔍 크게 보기ⓒ 워너 브라더스
좀 더 어이없는 웃음을 원한다면 19곰 테드(2012)가 있습니다. 어릴 적 소원으로 살아 움직이게 된 곰인형 테드가, 다 큰 어른이 되도록 주인공과 철없이 어울려 다닌다는 설정입니다. 세스 맥팔레인 감독이 연출하고 직접 테드 목소리까지 맡았으며, 마크 월버그·밀라 쿠니스가 출연합니다. TMDB 평점 6.5점으로 위 작품들보단 낮지만, 귀여운 곰인형이 입에 담기 힘든 농담을 던지는 그 간극 자체가 웃음 포인트라 호불호가 갈립니다. 점잖은 유머를 기대하면 안 맞을 수 있으니, 그 점은 미리 알고 트시는 게 좋습니다.
위 두 편이 너무 거칠게 느껴진다면, 애니메이션이지만 어른이 봐도 충분히 웃긴 주토피아(2016)를 추천합니다. 동물들이 사는 대도시에서 토끼 경찰 주디와 사기꾼 여우 닉이 사건을 파헤치는 디즈니 작품으로, TMDB 평점 7.8점에 투표 수 1만 8천 건이 넘습니다. 미국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았고, 빠른 말장난과 풍자가 곳곳에 숨어 있어서 혼자 봐도 여러 번 곱씹게 됩니다.
🔍 크게 보기ⓒ 디즈니
웃음에 한 스푼 더, 따뜻하거나 통쾌한 2편
마냥 깔깔대는 것보다 웃음 끝에 마음이 좀 따뜻해지거나, 혹은 통쾌함이 남는 작품을 찾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 결을 위한 두 편입니다.
먼저 리틀 포레스트(2018)입니다. 임용고시에 지친 혜원(김태리)이 고향 시골집으로 내려와 직접 농사짓고 요리하며 사계절을 보내는 이야기로, 임순례 감독 작품이고 김태리·문소리·류준열이 나옵니다. TMDB 평점 7.6점. 폭소하는 코미디는 아니지만, 친구들끼리 툭툭 던지는 농담과 계절마다 차려지는 음식이 보는 내내 입꼬리를 올라가게 만듭니다. 마음이 지친 날, 잔잔하게 웃으며 위로받고 싶을 때 딱입니다.
반대로 통쾌한 웃음을 원한다면 베테랑(2015)입니다. 류승완 감독이 연출하고 황정민·유아인·유해진이 나오는 액션 영화인데, 정의로운 형사가 안하무인 재벌 3세를 쫓는 과정에서 황정민과 유해진의 티키타카가 코미디 못지않게 웃깁니다. TMDB 평점 6.9점이지만 국내 1,341만 관객을 모은 흥행작입니다. 액션의 시원함과 형사들 사이의 능청스러운 농담이 섞여서, 스트레스 풀고 싶은 날 보면 속이 뻥 뚫립니다.
🔍 크게 보기ⓒ CJ ENM
색다른 한 편, 좀비 코미디 기묘한 가족
뻔한 코미디가 지겹다면 장르를 섞은 작품도 있습니다. 기묘한 가족(2019)은 망해가는 시골 주유소 가족이 우연히 만난 순한 좀비 ‘쫑비’를 집에 들이면서 벌어지는 좀비 코미디입니다. 이민재 감독 작품이고 정재영·김남길·엄지원·이수경이 출연합니다. TMDB 평점 6.8점으로 무난한 편이고, 무서운 좀비물을 기대하면 김이 빠지지만 ‘좀비 영화인데 하나도 안 무섭고 계속 웃기다’는 결을 즐기는 분에겐 신선합니다.
여기까지 12편을 정리하면 — 가족용으로는 극한직업·엑시트·수상한 그녀·써니, 또래끼리는 스물·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혼자 보는 밤엔 행오버·19곰 테드·주토피아, 따뜻하거나 통쾌한 결로는 리틀 포레스트·베테랑, 색다른 한 편으로 기묘한 가족입니다. 평점만 보면 써니(7.8)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8.0)이 가장 높고, 흥행 규모로는 극한직업이 압도적입니다. 오늘 기분과 함께 볼 사람만 정하면, 위에서 바로 한 편 고르실 수 있습니다.
🔍 크게 보기ⓒ CJ ENM
어디서 볼 수 있나 — OTT 확인 팁
마지막으로 어디서 보느냐가 가장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한국 영화들은 넷플릭스·티빙·쿠팡플레이·웨이브에 흩어져 있고, OTT 판권은 계약에 따라 들어왔다 빠졌다 하기 때문에 ‘지금 이 작품이 어느 플랫폼에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같은 영화라도 이번 달엔 넷플릭스에, 다음 달엔 티빙에만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보고 싶은 작품 제목을 본인이 구독 중인 OTT 앱에서 직접 검색해 보는 것입니다. 어느 OTT에도 없다면 네이버·구글에 ‘제목 + 다시보기’로 검색하면 VOD(개별 구매) 가능 여부가 나옵니다. 해외 작품인 행오버·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19곰 테드는 시기에 따라 웨이브나 왓챠, 혹은 IPTV VOD에서 볼 수 있는 경우가 많으니 함께 확인해 보시면 됩니다. 정확한 입점 현황은 각 OTT 앱과 고객센터 기준이 가장 신뢰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한국·해외·애니메이션을 넘나들며 실제로 웃기는 코미디 12편을 상황별로 정리했습니다. 가족과는 극한직업·엑시트, 또래끼리는 스물·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혼자 보는 밤엔 행오버·주토피아 — 이렇게만 기억하셔도 오늘 밤 선택이 훨씬 쉬워집니다. 무거운 하루 끝엔 평점 높은 화제작보다,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는 한 편이 더 큰 위로가 될 때가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비 오는 날에 어울리는 감성 영화와, 손에 땀 쥐는 첩보·법정 영화 추천도 이어서 다룹니다. 오늘은 가벼운 웃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하시고, 보고 싶은 작품이 생겼다면 본인 OTT 앱에서 먼저 검색해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