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최후의 인류」를 보다 보면 한 가지 질문이 먼저 떠오릅니다. 유승호·이은지·비비와 과학자 4인이 들어간 저 거대한 유리 건물 — 열대우림과 바다, 사막과 농경지가 한 지붕 아래 들어 있는 저 시설이 방송용 세트인가, 실제로 존재하는 곳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실존합니다. 미국 애리조나주 오라클의 바이오스피어2(Biosphere 2)는 1991년에 지어진 세계 최대 규모의 폐쇄 생태계 실험 시설이고, 그해 9월 26일 실제로 8명의 대원이 안에 들어가 문을 봉인한 채 2년을 살았습니다. 물·식량·공기를 전부 자급자족한다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야심 찬 실험이었고, 결과는 실패에 가까웠습니다. 산소가 사라졌고, 식량이 모자랐고, 사람들 사이가 무너졌습니다.
이 글은 방송을 보다가 궁금해질 그 실험의 전말을 정리합니다. 왜 지어졌는지, 무엇이 잘못됐는지, 1994년에 벌어진 기묘한 사건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시설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까지 — 「최후의 인류」가 이곳을 무대로 고른 이유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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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속 그 시설은 실존합니다 — 유리 피라미드 아래 다섯 개의 생태계
바이오스피어2는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 북쪽 오라클의 사막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이름이 ‘2’인 이유는 단순합니다. 지구 자체가 첫 번째 생물권(바이오스피어1)이고, 이 시설은 인간이 만든 두 번째 생물권이라는 뜻입니다. 텍사스 석유 재벌가의 상속자 에드 배스(Ed Bass)가 약 1억 5천만 달러를 댔고, 우주 이주를 꿈꾸던 민간 그룹이 설계했습니다.
유리와 철골로 밀봉된 약 1만 2천 평방미터 공간 안에 열대우림, 바다(산호초 포함), 맹그로브 습지, 사바나, 사막, 농경지, 주거 구역이 함께 들어갔습니다. 외부와 공기조차 통하지 않는 완전 밀폐 구조 — 「최후의 인류」 제작진이 ‘인간이 만든 두 번째 지구’라고 소개한 표현은 과장이 아니라 이 시설의 설계 사상 그 자체입니다.
목적도 방송의 세계관과 정확히 겹칩니다. 지구가 망가졌을 때 인류가 화성 같은 다른 행성에서 폐쇄 생태계를 꾸려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미리 실험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1991년 9월 26일, 남녀 각 4명으로 구성된 8인의 ‘바이오스피어리언’이 전 세계 언론의 카메라 앞에서 에어록 안으로 들어갔고, 문이 봉인됐습니다. 계획된 기간은 2년이었습니다.
사라진 산소 — 21%에서 14%로, 범인은 콘크리트였습니다
실험이 시작되고 몇 달이 지나자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내부 산소 농도가 꾸준히 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미 지구물리학회지(Eos)에 실린 분석에 따르면 첫 16개월 동안 산소는 대기 표준인 21%에서 14%까지 내려갔습니다. 해발 4,000m 고산지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대원들은 만성 피로와 수면 무호흡에 시달렸고 간단한 계산이 어려워졌다는 증언까지 나왔습니다.
기묘한 점은 산소가 줄어드는 만큼 이산화탄소가 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딘가에서 CO₂가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범인은 건물 그 자체 — 정확히는 충분히 양생되지 않은 콘크리트였습니다. 토양 미생물이 산소를 소비해 CO₂를 내뿜고, 노출된 콘크리트가 그 CO₂를 탄산칼슘 형태로 흡수해 가두는 이중 작용이 일어난 것입니다. 생태계 설계는 정밀했지만, 건축 자재의 화학 반응이 변수가 될 거라고는 누구도 계산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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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993년 1월, 운영진은 외부에서 산소를 주입하기로 결정합니다. ‘완전 자급자족’이라는 실험의 대전제가 깨진 순간이었습니다. 식량 사정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작물 수확이 계획에 못 미치면서 대원들은 만성적인 허기 속에 살았고, 평균 체중이 크게 줄었습니다. 함께 들여보낸 동물과 식물 다수가 폐사했고, 수분(꽃가루받이)을 담당할 곤충이 죽어가는 사이 바퀴벌레와 개미가 번성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가 남아 있었습니다. 사람이었습니다. 8인의 대원은 실험 운영 방향을 두고 두 파벌로 갈라졌고, 2년 차에는 서로 말을 섞지 않는 사이가 됐다는 사실이 훗날 다큐멘터리와 회고록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과학보다 인간관계가 먼저 무너진 셈입니다.
1994년의 막장 — 연방보안관, 그리고 스티브 배넌이라는 이름
1차 실험은 1993년 9월, 예정된 2년을 채우고 종료됐습니다. 절반의 실패라는 평가 속에 1994년 3월 2차 미션이 시작됐지만, 이번에는 실험이 아니라 경영이 무너졌습니다. 투자자 에드 배스는 비용 문제로 기존 운영진과 충돌했고, 1994년 4월 1일 연방보안관이 접근금지 명령서를 들고 시설 운영진을 몰아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집니다.
이때 배스가 구원투수로 데려온 인물이 베벌리힐스의 투자은행가였던 스티브 배넌 — 훗날 트럼프 행정부의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되는 그 배넌입니다. 그는 한동안 이 시설의 CEO로서 구조조정을 지휘했습니다. 여기에 1차 실험 대원이었던 두 명이 같은 해 4월 새벽 시설에 침입해 에어록을 열고 외부 공기를 유입시키는 사건까지 겹칩니다. 두 사람은 "새 경영진이 안에 있는 대원들의 안전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어 경고하려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2차 미션은 결국 6개월 만에 조기 종료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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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가 남긴 것 — 조롱거리에서 기후과학의 전초기지로
1990년대의 바이오스피어2는 언론의 조롱거리였습니다. 과학 실험이라기엔 운영 주체의 색채가 짙었고, 산소 주입과 파벌 싸움, 경영권 분쟁이 헤드라인을 도배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평가는 달라졌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폐쇄 생태계가 얼마나 예측 불가능한지를 이만한 규모로 보여준 실험은 전에도 후에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실패의 목록 자체가 데이터였습니다. 콘크리트의 CO₂ 흡수, 토양 미생물의 산소 소비, 수분 곤충 폐사가 농업에 미치는 연쇄 효과, 그리고 밀폐 공간에서의 집단 심리 — 이후 화성 거주 시뮬레이션과 우주 장기체류 연구가 참고하는 교훈 상당수가 이 실험에서 나왔습니다. 2011년부터는 애리조나대학교(University of Arizona)가 시설을 인수해 지구과학 연구기지 ‘B2’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공 바다로 산호초 백화를, 경사면 실험장(LEO)으로 토양과 물 순환을 연구하는, 기후위기 시대의 실험실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최후의 인류가 이곳을 무대로 고른 이유
이 역사를 알고 나면 「최후의 인류」의 설계가 또렷하게 읽힙니다. 프로그램의 설정은 2038년 기후 재난으로 지구 시스템이 붕괴하기 시작한 근미래 — 7인의 출연자가 인류의 ‘두 번째 지구’ 가능성을 시험하는 극비 프로젝트에 투입됩니다. 30여 년 전 8인이 실패했던 바로 그 장소에서, 이번에는 어디까지 가능한지 다시 묻는 구조입니다.
1회에서 출연자들이 통과한 물 확보 미션, 그리고 예고된 네 개의 생존 관문도 1991년 실험의 실패 지점들과 겹쳐 보입니다. 물 정화, 식량 확보, 공기 균형, 생태계 복원 — 전부 당시 대원들을 무너뜨렸던 항목들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이번 7인 곁에는 뇌과학자(장동선), 화학자(장홍제), 의사(이낙준), NASA 출신 지구과학자(김한결)가 함께 있고, 실패한 실험의 데이터가 교과서로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1991년의 실패를 알고 보면 방송의 미션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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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볼 수 있나 — 견학 정보와 정리
바이오스피어2는 현재 일반에 공개돼 있습니다. 애리조나대 운영 공식 안내 기준으로 추수감사절·크리스마스를 제외하고 연중 오전 9시~오후 4시에 셀프 가이드 투어로 내부 열대우림·바다·거주 구역 일부를 둘러볼 수 있습니다. 투손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라, 미국 서부 여행 일정에 끼워 넣는 관람객도 적지 않습니다.
항목
내용
위치
미국 애리조나주 오라클 (투손 북쪽 약 1시간)
건설·1차 실험
1991년 완공 · 1991.9.26~1993.9 8인 2년 격리
실패 요인
산소 21%→14%(콘크리트 CO₂ 흡수) · 식량난 · 내부 갈등
2차 실험
1994년 약 6개월 만에 조기 종료 (경영 분쟁·배넌 사태)
현재
애리조나대 지구과학 연구기지 B2 · 일반 견학 가능
「최후의 인류」는 매주 목요일 밤 10시 50분 EBS1에서 방송되고, 다음날 넷플릭스에 공개됩니다. 방송을 보면서 이 글의 1991년 실험과 겹쳐 보면, 출연자들이 마주치는 위기가 어디서 온 설계인지가 보일 것입니다.
정리합니다. 「최후의 인류」의 무대 바이오스피어2는 1991년 실제로 8인이 2년간 갇혀 살았던 실존 시설이고, 산소 감소(21%→14%)·식량난·인간 갈등으로 절반의 실패를 기록했으며, 1994년 스티브 배넌 영입과 전 대원 침입이라는 기묘한 사건을 거쳐 지금은 애리조나대의 기후과학 연구기지가 됐습니다. 30년 전 실패의 데이터 위에서 7인의 새 실험이 진행 중인 셈입니다.
출연진이 궁금하다면 과학자 4인의 정체(NASA 출신 김한결 박사 포함)와 비비의 파이어걸 등극기, 유승호의 첫 생존 리얼리티 도전기를 이어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시청 방법은 공개일·다시보기 가이드에 정리돼 있습니다.